언젠가부터 미술 전시의 예술성이 철저하게 가격으로 평가됐다. 명화와 팝아트,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입장료 장사를 하고, 콜렉터들을 불러 모아 그림을 팔고, 고가에 전시 공간을 임대하는 비즈니스가 기획됐다.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예술가들의 절박한 마음을 오용한 전시는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적 쓸모에 불과하다. 전시 공간이 물질과 허위에 메몰되면 예술의 사회적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다양한 실험과 실천, 미술의 정치사회적 참여가 점점 외면당하게 된 이유와 무관치 않다. 예술성은 합리적 산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자본의 논리로 작동하는 전시는 주체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문화예술 권력에 예속당하며 독점과 불평등, 비도덕성과 배금주의 같은 사회적 문제로 유표화되고 만다.
작은 부분부터 벽을 깨야 했다. 갤러리와 전문 기획자들에 의해 일방통행적으로 운용되는 전시 형태에 유머와 낙천성을 부여하면서 미술 전시의 본질에 관한 진정한 물음을 던져야 했다. ‘멋진오빠 프로젝트’는 기존의 전시 방식을 거부했다. 오로지 순수한 마음 하나로 좋은 작품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을 간구했다. 그 간절한 마음은 광범위한 연대의 힘을 발동했다. 전시 기획자와 작가, 갤러리와 관람객이 동등하게 만나 소통하고 토론하는 상부상조적 광장을 조성했고, 전시 공간은 미술 시장의 역할을 뛰어넘어 공동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미술의 다양한 가치와 감동을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했다.
이런 사색과 과정을 거쳐 ‘멋진오빠 프로젝트’는 탄생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기획 운용에 탄력이 붙었고, 전시의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미술계와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발상과 작가들의 교감으로 탄생한 ‘멋진오빠 프로젝트’
색다른 사유와 사회적 연대가 어떻게 전시로 구체화되는지 입증하는 멋진오빠 프로젝트 ‘그들에 대해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전이 7월 31일부터 8월 11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멋진오빠 프로젝트’는 지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연대로 마련됐다. 전시 공간은 나무아트가 제공했고, 전시 기획과 행정은 멋진오빠 프로젝트 기획팀이 맡았다. 전시에는 강미미, 강현정, 정승원, 정형민, 지수김 작가가 참여했으며 민중의소리, 아도재, 헥사곤, 네오룩, 김성숙, 이향임, 장현주가 후원했다. 이 밖에도 건강한 전시 문화 조성과 벽을 허문 대중문화 향유의 즐거움, 미술가들의 사회적 역할을 지지하는 많은 분들이 격려하고 응원하고 도움을 줬다.
‘멋진오빠 프로젝트’는 언제나 여러 사람들과 다종다양한 작품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협력과 연대, 배려와 공존을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가 큐레이션에 담겨서다.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이 이타성이나 공공의 이익에서 벗어나 영리 영달만을 취했다면 지금과 같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강미미, 강현정, 정승원, 정형민, 지수김 작가의 작품들
강미미 작가는 자아 표현에 자유롭게 몰두하는 예술가다. 조화와 균형을 지향하는 자연의 질서에 부합하는 정서로 삶의 실체를 드러내왔다.
강 작가의 작품은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호기심을 애교스럽게 촉발한다. 그때그때 스쳐 지나갔던 단상들을 간결한 구성과 묵직한 색채로 재현해 진지한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마냥 따분하게 느껴졌던 자연의 풍경을 때론 유쾌하게, 때론 쓸쓸하게, 때론 냉소하게, 때론 강렬하게 비틀고 형상화하면서 일상을 비일상으로 변조한다.
강 작가는 개인적 경험과 내면적 고민을 창작의 근간으로 삼는다. 보고, 듣고, 느끼면서 마음속과 머릿속에 축척된 갖가지 심상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이를 테면 ‘자연의 순환, 꿈과 현실, 생명의 이치’ 같은 인문학,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 묻고 대답하면서 의미 있는 삶 속에 내재된 기저를 길어 올린다. 삶의 중요한 가치 기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작업하는 듯싶다.
강미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정형화된 스타일의 회화 작품을 출품했다. 회화의 원초적인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라 즐겁다.
강현정 작가는 구상이나 추상 같은 인위적인 틀에서 탈피한다. 세련된 작화와 화려한 색채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표면상으로는 난해하고 대담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특유의 서정성으로 육화된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강 작가의 작품은 영기 서린 자태로 사람들의 눈길을 현혹하면서 삶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유발한다. 갖가지 소재들이 시간적으로 뒤엉키고, 서사적으로 각색되면서 심도 있는 고찰을 부추긴다. 사실적 묘사와 탄탄한 구성, 빛이 번지는 잔상이 어우러지며 마음속에 내재된 본성과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강현정 작가는 회화적 형상을 추구하는 동시에 형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과거와 현재, 우성과 본성, 생각과 표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치환하고 병치하고 나열하면서 근원적 에너지를 탐색한다. 강 작가는 예술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의 본질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정승원 작가는 자기 성찰의 스토리텔링을 번뜩이는 설치 작품으로 박제한다. 꼭꼭 숨겨 둔 속마음을 양질의 미끼로 투척하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 속마음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로 확장하면서 먹고살기 바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동병상련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정 작가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중에서 주의 깊게 읽기 바라는 장치로 사용된 이탤릭체 문장에 주목하고, 자신의 어릴 적 기억 중에서 이탤릭체 문장이나 단어들로부터 소환되는 작가의 어릴적 기억들을 추적한다.
정승원 작가의 작품은 내면의 성찰과 자각을 미술 행위로 끌어들여 자연스럽게 정치화한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사건을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로 드러내면서 비평조로 탐색한다. 사람들은 슬픈 일이나 힘들었던 기억, 부끄러웠던 순간을 안고 살아가기 어려우면 마음을 조작해 폄훼하거나 부풀려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 작가는 물러서지 않고 사실 그대로와 마주한다. 세 살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살았을 때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른 지금에도 “나는 왜 이토록 모르고 무관심했을까?” 자성한다. 또 사회적 재난과 국가 폭력을 파렴치와 몰상식으로 대하는 저들의 행태를 목도하면서 예술가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뇌한다.
정형민 작가는 이번 전시에 강경하고 당당하며 냉철하고 파격적인 작품을 출품했다. 자유분방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적 감각으로 개인의 정신사를 주저함 없이 형상화했다. 그래서인지 정 작가의 작품은 눈으로 보고 뇌로 인식하기 전 그 찰나에 강렬한 충격을 안긴다. 그 충격의 실체는 해일처럼 밀려오는 수많은 물결이다. 예를 들면 가부장적이거나 착취적인 구조, 차별이나 불평등 같은 반인권적 의식, 비민주성이나 불공정성에 억눌려 있던 감정을 분출하려는 저항성 같은 것이다.
정 작가의 작품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이 산하에’를 떠오르게 한다. 노랫말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중에서 ‘소리 없는 통곡’이라는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소리 없는 통곡은 명백한 역설이다. 왜 통곡인데 소리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이미지에 틀을 씌우고, 그 위에 물감을 뒤덮은 작품 ‘같은 곳을 바라보는 세 여인’과 하늘 높이 뻗은 손을 잡고 있는 작품 ‘Just Let me out(그냥 날 보내줘)’은 ‘ 소리 없는 통곡’과 같은 맥락에서 역설의 미학을 안겨 준다.
정형민 작가가 ‘자신의 것을 배제하고 타자의 이미지를 괴롭히는 행위’에 작업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식도 역설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작가적 의도로 생각된다.
지수김 작가의 작품은 실재가 분절되고 흐트러지고 뒤섞이면서 추상으로 변모한다. 형태가 변형되고 뭉개지면서 정확한 해독을 저해하는 아리송함을 느끼게 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지 않아서 일말의 형태가 짐작되고, 그림의 위아래가 뒤바뀌어 벽에 걸릴 염려도 없어 보인다.
김 작가의 작품은 난해함보다 되레 수난을 받거나 혼란을 겪는 기형의 느낌을 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원활하고 원만하게 형성되기도 하지만 이해타산에 얽매이면서 매우 어지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에 닿기도 한다. 그럴 때는 눈이 익은 풍경도 낯설어 보이고 알고 지냈던 사람들도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김 작가의 붓칠은 복잡하고 미묘한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 낯선 풍경, 내면의 심상을 형상화하기에 아주 제격이다.
지수김 작가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변화 등을 캔버스에 기록한다. 색이 흐트러지고 형채가 헝클어져서 진의가 무엇인지 불명확하지만 일반인의 시선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구체적인 사실과 적확한 의도로 간출하게 화면을 구성하고 도구를 컨트롤하는 김 작가의 테크닉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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