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다. 현대미술과 디자인, 고전적 미와 상업성이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전시 지형을 선보인다. 멋진오빠 프로젝트5, '내려놓기'전이다.
공유와 연대가 낳은 힘일 테다. 각각의 의미성과 독창성이 하나돼 여러 가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예민하기만 한 바이올린 독주가 첼로와 피아노, 트럼펫과 오보에 소리와 겹치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 같다고 할까.
'멋진오빠 프로젝트'는 참신성과 신뢰도가 높다. 그림이나 전시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거나 일회성 행사로 치부하는 여느 기획전들과 궤를 달리한다. 상업성을 배제했다기보다는 그 속에서 공익성과 예술성의 공존을 추구해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객관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았고, 수준 높은 작가들의 참여로 전시의 질도 담보할 수 있었다. (이는 시대가 바뀌고 인심이 변해도 멋진오빠 프로젝트가 꼭 지켜야 할 당위적 명제다.)
이번에 열린 시즌 5 '내려놓기'전도 마찬가지다. 대중성이라는 관념주의적 고민에서 벗어나 미술의 심미성에 천착한 작가 5인의 다양한 작품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여 오묘한 조화를 연출한다. 근래 보기 드문 전시다.
(자본주의가 심화되면 자유와 개방을 치적하고, 효율과 상품가치를 극대화한다. 미술계도 똑같다. 진보적이거나 새롭지 않아도 이름값과 뒷배경만 있으면 예술적 타당성과 상당한 가치의 저작물성을 보장받았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던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도 비껴가지 못했다. 비엔날레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문화패권의 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소위 유력 미술관과 학파, 또 그들이 이끄는 큐레이터 군단들이 백화점처럼 작품을 진열하고 작가들의 이름값을 올려 이윤을 늘리는데 집중했다. 비엔날레도 이러한데 상업 미술 시장은 오죽할까.)
나무아트는 고유하고 명료했다. 상투적인 상업 갤러리의 범주에서 벗어난 전시 공간이 주는 아우라였다. 한국 갤러리들은 전시장을 대관하거나 작품을 팔기 위해 전시를 여는 곳이 대부분이다. 반면 나무아트는 깐깐한 작가들을 초청해 의미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띄우고 정치화하는, 몇 안 되는 광장형 화랑이다.
멋진오빠 프로젝트5, '내려놓기'전에서 가장 복잡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작품은 박현수 작가의 '혁필 그라피티 부적'이다. 혁필은 가죽으로 만든 붓이고, 혁필화는 이 붓으로 그린 그림이다. 독자들도 본 적이 있을 듯싶다. 몇 년 전만 해도 인사동 거리를 오가면 가죽 띠에 형형색색의 안료를 발라 한자 이름을 빠르고 화려하게 그려주는 작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혁필화는 예로부터 집안의 안녕과 무사태평을 기원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박 작가는 "무엇인가 원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이 염원을 담기 위해, 불교 진언의 '옴' 글자와 '그래피티의 모습을 따와 혁필화의 성질과 접목"했다고 밝혔다.
전시장에는 단순한 정경이 혼연돼 어우러지면서 아련한 향수를 불러내는 작품도 있다. 박환희 작가가 밤 산책 중에 만난 일상을 포착해 쓱쓱 그려낸 풍경이다. 누군가에게는 무료하고 단조로웠을 이미지들이 그에게는 색다른 사색을 충동질하는 대상이었고, 창작 본능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됐다.
박 작가는 삶에 쫓겨 살다 우연히 마주친 정경에 매료됐고, 그 순간을 갱지 위에 옮겼다. 갱지는 지질이 좋지 않지만 특유의 안정감과 포근함을 주는 종이다. 그는 "재료가 주는 편함 때문에 쉽게 생각들을 풀어낼 수 있어 꽤나 많은 이미지들을 그렸다"며 "툭 던지듯이 갱지 위에 얹히는 다양한 재료들의 느낌은 그리는 동안 내 자신에게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흩뿌려진 물감, 머리카락에 뒤덮인 얼굴, 두 팔을 벌리고 누운 육체. 물감을 긁어낸 배경 위로 허탈과 실의에 젖어 보이는 여자가 있다. 아주 복잡하고 현란한 느낌의 그림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 전시 제목과 가장 잘 들어맞을 것 같은 이유진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제목은 '너와 나', 위대한 사상가 마틴 부버의 책과 동명이다. 이 작가는 "나의 상실은 부버의 통찰처럼 관계가 깨어진 데서 왔던 걸까"라고 의문하면서 "너를 사랑하는 것이 나를 완성하고 있었다"고 사유한다.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깨어지고 난 뒤에 찾아오는 좌절은 크고, 감정의 상실이 부른 통증은 그만큼 추스르기 버겁다. 만남과 대화도 무가치적으로 느껴지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계도 부질없게 만든다. 그럴 때일수록 내려놓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관계는 맺어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참다운 내면은 발견되며, 삶에 대한 지력과 통찰은 커진다.
자줏빛 꽃들이 만발했다. 맨드라미다. 이 꽃은 한해살이풀이라 늦가을에 죽고 나면 씨앗을 뿌려 다음 해를 기약한다. 화려한 날을 뒤로한 채 소멸한 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만 다시 꽃으로 피어난다. 홍효 작가는 단단한 땅을 뚫고 자란 맨드라미를 보면서 인생을 읽었고, 한때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욕망하는 꽃을 보면서 인간을 떠올린다.
홍 작가는 순환의 삶을 좀 더 나은 것으로 이끌려는 시도에 적극적이고, 그 시도의 답을 인간 관계에서 찾는다. 작품활동은 현실 생활과 분리될 수 없고, 오직 관계 속에서만 발전한다는 것을 시원하게 인정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가장 복잡하고, 생각에 따라서는 다양한 층위를 내포한다. 홍효 작가는 "살아가는 동안 관계를 떠난 일상은 없다"면서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알아차리고 오롯이 내가 되어"간다고 밝혔다. 그의 작품은 가히 반성과 성찰의 결과물이라 할만하다.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바이탈 모니터의 그래프가 벽면에 가득하다. 완만하고 뾰족하고, 간격이 줄었다 늘어난 바이탈 사인이 이채롭다. 몹시 아팠던 것일까? 아직 듣지도, 묻지도 못한 황기훈 작가의 과거를 작품에서 느낀다. 한편 작은 따옴표를 그려 넣은 작은 나무 상자는 궁금하다. 잠시 잊고 디스플레이를 하지 못했던 픽셀 패턴은 세련된 테이블 매트처럼 새롭다. 전시장 벽면을 바라보니 그냥 '오뜨꾸뛰르' 같다는 느낌이 든다.
황 작가는 바이탈 모니터 그래프를 다른 이미지로 변용한다. 형태의 유사성에서 산이나 절벽을 오르고 내리는 형상으로 재해석한다. 어딘가로 하염없이 떠나고 싶은 방랑벽이거나 미지의 세계 혹은 대자연과 맞닿고 싶은 염원, 그것도 아니라면 매우 아프고 절망적이었던 과거의 경험을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으로 치환하려는 시도 같기도 하다. 그는 "지난봄 바이탈 모니터(vital monitor)를 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지낸 적이 있었다"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구축된 좌표들은 또 다른 이미지들로 재해석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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